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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가 그랬어?
네덜란드는 어떻게 인도네시아를 350년간 식민지배 했을까? 본문
네덜란드는 어떻게 인도네시아를~ 350년간 식민지배 했을까?
작은 나라 네덜란드는 큰 나라 인도네시아를 1602년부터 1949년까지 정확히 347년간 식민지배 했습니다. 347년을 대략 350년이라고 간주하는데, 작은 나라 네덜란드가 어떻게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배 할 수 있었을까요? 그 역사를 17세기에서 20세기까지 세기별로 나누어서 알아봅니다.
17세기: 향신료 무역과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1595년부터 네덜란드의 선단들은 향신료무역을 위하여 인도네시아를 왕복하면서 커다란 수익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네덜란드에서 인도네시아까지 선박으로 오가는데 2~3년 이상이 걸리고 아주 위험한 항해였습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네덜란드 정부는 1602년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설립했습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네덜란드어로 VOC (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라고 합니다. VOC는 인도, 동남아 지역에 경제적으로 진출하기 위해 세운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였습니다. 동인도회사는 1605년에 인도네시아의 암본에서 포르투갈 세력을 몰아내고 인도네시아의 향신료 무역을 독점했어요. 동인도회사는 영구적인 기지를 오늘날 자카르타 지역인 ‘바타비아(Batavia)’에 건설했지요.

1630년대에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의 해상무역을 지배하기 위해서 적극적인 군사활동을 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크고 작은 왕국을 정복하기 위해서 네덜란드는 “분리하고 경쟁을 유도하여 양측을 모두 복속” 시키는 ‘Divide and Conquer’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이 전략에 따라 1612년부터 1669년 사이에 네덜란드는 반다섬(Banda),
멀라꾸섬(Melaku), 띠도레섬(Tidore), 마까사르지역(Makassar)을 차례로 정복했습니다.

18세기: 동인도회사의 마따람 왕국 정복
18세기에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 가장 강력하고 오래 지속된 왕국은 ‘마따람(Mataram)’ 이었습니다.

동인도회사와 마따람 왕국은 세차례의 커다란 전쟁을 했습니다. 1차 자바전쟁은 1704년부터 4년간, 2차 자바전쟁은 1719년부터 4년간 지속되었죠.

또, 1740년에 중국인들이 설탕사업권 문제로 반란을 일으키자, 평소 중국인에 불만이 많았던 현지인들은 중국인들을 대량 학살하여 그 희생자가 1만명에 달했습니다. 중국인화교의 경제력 독점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인도네시아의 민감한 문제입니다.

3차 자바전쟁은 1746년부터 11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세차례의 격렬한 자바전쟁 후 마따람왕국은 1755년에 동인도회사에 멸망합니다.
한편, 유럽 대륙에서는 프랑스 혁명군이 1793년에 네덜란드를 침공해서 나중에 친프랑스 정권을 세웁니다. 1799년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해산되고 네덜란드왕국이 직접 통치합니다.

19세기: 전 인도네시아에 대한 정복 완료
프랑스 혁명전쟁과 나폴레옹 전쟁 기간 중, 인도네시아의 자바섬은 1811년 영국에 의해 점령됩니다.

이때 영국의 총독으로 온 ‘래플즈’는 식민정책을 대대적으로 개혁합니다. 래플즈는 나중에 싱가폴을 건설합니다.

영국의 식민지배를 경험한 인도네시아인들은 영국인들이 네덜란드인보다 훨씬 세련되게 통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면서 1816년에 인도네시아는 다시 네덜란드 왕국의 통치로 돌아갑니다.

19세기초에 네덜란드는 240만명의 적은 인구로 인도네시아와 전세계 기지들을 통치해야 했습니다. 1824년에 영국과 네덜란드는 서로 관심 영역을 규정하는 ‘런던조약(Treaty of London)’을 체결했습니다. 영국은 자신의 영역에 말레이 반도와 싱가포르를 포함시켰고,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에 대한 지배를 다시 확립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의 상황이 안정되자, 네덜란드는 자바 섬 외곽에 있는 도서정복을 재개합니다. 깔리만딴에 있는 ‘반자르마신 술탄국’을 4년간의 전쟁 끝인 1863년에 네덜란드에 복속 시켰습니다. 또, 수마트라 북부의 ‘무슬림 아체족’을 30년간의 길고 처참한 전쟁 후인 1903년에 네덜란드에 굴복시켰어요. 1906년에 인도네시아에서 마지막으로 발리섬을 정복합니다. 일부 발리 귀족들은 네덜란드에 항복하는 대신에 가족과 신하들을 모아서 뿌뿌딴(Puputan)이라는 ‘집단 자결의식’을 행했습니다.

이런 험난한 과정을 거치면서 네덜란드는 20세기 초가 되어서야 전 인도네시아 군도에 대한 정복을 완료합니다.
20세기: 일본의 인도네시아 식민통치와 인도네시아의 독립
20세기 초에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 식민통치에 대한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1901년부터 ‘윤리정책(Ethical Policy)’을 실시했습니다. 목표는 인도네시아인들의 복지 향상과 경제향상을 위한 교육, 관개사업, 건강증진 사업 등이었습니다.

이 정책을 통해 현지인으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기대한 네덜란드의 희망과는 달리, 인도네시아인들은 교육을 통하여 식민정부의 불평등을 알게 되었고, 국제정치상황도 이해했으며, 자신들 문화의 가치도 새롭게 인식했습니다.

다종족 국가인 인도네시아가 하나된 민족의식을 갖게 된 계기는 1928년 바타비아에서 있었던 ‘청년의 맹세’ 즉 ‘숨빠 뻐무다(Sumpah Pemuda)’ 였습니다. 이 선언에서 인도네시아인들은 “하나의 조국-인도네시아, 하나의 민족-인도네시아 민족, 하나의 언어- 인도네시아어”를 채택했습니다.

이후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였고, 1942년 3월에 네덜란드군은 일본군에 항복함으로써, 네덜란드의 식민통치는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대략 20만명의 네덜란드군, 중국인, 연합국 병력들이 일본군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이 중 30%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처음에 인도네시아인들은 일본군을 ‘해방군’으로 생각했으나 3년 반동안의 일본식민지 기간 중, 강제노동에 동원되거나 수많은 수난을 당해야 했습니다.

일본은 주로 ‘전쟁물자조달’과 ‘전쟁인력보충’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결국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은 연합군에 항복하였고, 인도네시아의 초대 대통령과 부통령이 된 ‘수카르노’와 ‘하타’는 2일 뒤인 8월 17일에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선언합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를 다시 식민 지배하려는 야욕을 갖고, 1946년에 55,000명의 대규모군을 파병하여, ‘인도네시아를 재침공’합니다. 네덜란드는 막강한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점령지역을 넓혀 나갔으나, 더 이상 네덜란드의 식민지배를 받기 거부하는 인도네시아인들은 끈질기게 저항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독립운동은 주로 이 시기의 이야기입니다.

네덜란드의 재점령 시도는 국제사회, 특히 미국의 강력한 압력으로 좌절되었습니다. 마침내, 1949년 12월에 네덜란드는 통치권을 인도네시아에게 양도하였고, 인도네시아는 진정한 의미의 독립을 하게 됩니다.

이 후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국가를 만들려는 세력과 그 반대 세력 간의 종교적 갈등, 공산주의자들의 반란, 경제적 어려움, 종족 간의 갈등 등 여러 혼란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인도네시아는 경제를 발전시키고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아세안의 모범 국가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작은 나라 네덜란드가 350년간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배한 내용을 요약하면,
첫째, 네덜란드의 인도네시아 식민지배는 ‘경제적 이윤 극대화’가 주목적이었습니다
네덜란드는 이 과정에서 인도네시아의 여러 종족과 수많은 전쟁을 치렀고

경제적 착취를 자행하여서, 인도네시아인들은 네덜란드에 대하여 감정적 앙금을 갖고 있습니다.

둘째,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 왕국과 섬에 대해서 ‘Divide and Conquer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네덜란드는 부족한 인구로 식민지를 관리하고 전쟁을 수행해야 했으므로, 인도네시아인들이 단결하는 것을 막았고, 우호적인 현지인을 군인으로 활용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강구했습니다.

여러 어려움에도 강직하고 끈질긴 네덜란드인들은 20세기 초에 인도네시아의 모든 섬들을 정복했습니다.
셋째,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에 ‘유럽식 문화와 행정, 사회인프라’를 전파했습니다
그리고, 공공교육, 여성에 대한 평등한 권리, 유럽과의 교역창구, 인도네시아를 유럽인에게 매력 있는 관광지로 소개하는 등 긍정적 영향도 끼쳤습니다.

네덜란드는 어떻게 인도네시아를 350년간 식민지배 하였는지 이해가 되었습니까? 감사합니다.